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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o Some Among You Say There Is No Adam?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

 

1 Corinthians 15: Adam and the Gospel

고린도전서 15: 아담과 복음

 

Simon Turpin , 이종헌 역

출처: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characters/adam-and-eve/how-do-some-among-you-say-there-no-adam/

 

1.jpg


 

 

 

Introduction: Greek Philosophy and the Rejection of Adam

서론: 그리스 철학, 아담을 거부함

 

The Apostle Paul often found himself in a cultural context in which he had to deal with many objections to the Christian faith. In 1 Corinthians 15, for example, the Corinthian congregation was questioning the future resurrection of believers: “How do some among you say that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1 Corinthians 15:12).

사도 바울은 종종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많은 반대에 대처해야만 하는 문화적 맥락 속에 자신이 들어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은 믿는 자가 미래에 부활한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린도 전서 15:12).

 

The Corinthians struggled with the idea of a bodily resurrection because it did not fit into their cultural worldview. The city of Corinth was permeated with Greek philosophy. The Greeks loved speculative philosophy and were proud of their intellect as they sought after and trusted in the “wisdom of men” (1 Corinthians 1:22, 2:5). In their own wisdom, some of the Corinthians rejected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because of the Greek idea of the immortality of the soul apart from the body. Many saw the body (matter) as corrupt and not worthy of any form of immortality, and therefore mocked the idea that it would be resurrected (Acts 17:32).

고린도 교인들은 육체의 부활이라는 개념이 그들의 문화적 세계관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고린도 도시에는 그리스 철학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추리적인 철학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지혜”(고린도전서 1:22, 2:5)를 추구하고 신뢰하면서 그들의 지혜를 자랑스러워했다. 자신들 스스로의 지혜에 빠져서, 고린도 교인 중 일부는 육체와 분리된 혼의 불멸에 관한 그리스의 개념 때문에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물질)가 썩는 것을 보았으므로 불멸에 대한 어떤 형태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그것이 부활 할 것이라는 생각을 조롱했다(사도행전 17:32).

 

Two thousand years later, not much has changed. Just as the culture in Paul’s day was permeated with Greek philosophy, so it is today. The worldview that undergirds Darwinian evolutionary thought is essentially Greek at its core(1). Many Christians are still integrating Greek philosophy into Christianity; however we have just given it the name science rather than philosophy.

2천년이 지난 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바울 시대의 문화에도 그리스 철학이 스며들어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그렇다. 다윈의 진화론적 생각이 깔려있는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그리스 세계관의 핵심을 이룬다(1).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통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거기에 철학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Whereas Paul specifically asked how the Corinthians could say there is no resurrection, today’s Christians must ask, “How do some among you say there is no Adam?” Because Greek thinking has been synthesized with biblical thinking, it is becoming increasingly popular among many evangelicals to reject a historical Adam(2). Theistic evolutionist Denis Lamoureux believes not only that Adam never existed, but also that this fact has no impact whatsoever on the foundational beliefs of Christianity. Commenting on 1 Corinthians 15:17 he states:

바울이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찌하여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물었던 반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스식의 사고가 성경적 사고와 합성되었기 때문에 많은 복음 주의자들 사이에 역사적 아담을 거부하는 것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2). 유신론적 진화론자 데니스 라무루(Denis Lamoureux)는 아담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믿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고린도전서 15:1-7에 관한 주석을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is is the Gospel as stated in the Bible, and there is no mention whatsoever of Adam and whether or not he existed. Christian faith is founded on Jesus, not Adam. . . . . We must also separate, and not conflate, the historical reality of Jesus and His death and bodily resurrection from the fact that Adam never existed(3).

이것이 성경에 기록 된 복음이며, 여기에는 아담에 관한 어떤 언급도, 그의 존재 여부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아담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초로 한다. ...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역사적 실재성과 그분의 죽으심과 육체의 부활을 아담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연결시키지 말고 분리시켜야 한다(3).

 

Lamoureux acknowledges that the Apostle Paul understood Adam to be a real person. However he rejects this as a reason for us to believe in a historical Adam since, he believes, Paul’s view of Adam was based upon an ancient view of science(4).

라무르는 사도 바울이 아담을 실제의 사람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아담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고대의 과학관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역시 역사적인 아담을 믿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이것을 거부한다(4).

 

Just as the Resurrection is central to the gospel, the idea of there being a first man, Adam, is foundational to the gospel and to the doctrines that are built upon it.

부활이 복음의 중심이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이 있다는 생각은 복음 및 복음에 근거한 교리의 기초가 된다.

 

 

1 Corinthians 15:15

고린도전서 15:1-5

 

The uniqueness of Christianity is that it is grounded in history. The gospel is based upon the historicity of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as Paul explains:

기독교의 유일성은 그것이 역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듯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Moreover, brethren, I declare to you the gospel which I preached to you, which also you received and in which you stand, by which also you are saved, if you hold fast that word which I preached to youunless you believed in vain. For I delivered to you first of all that which I also received: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at He was buried, and that He rose agai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at He was seen by Cephas, then by the twelve. (1 Corinthians 15: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고린도전서 15:1-5).

 

The gospel is about what God has done and is doing for us in Jesus Christ.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are the central events of the gospel. But notice that Paul says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Why did Christ have to die for our sin? In his letter to the Romans, Paul argued that it was through one man that sin entered the world, and death through sin (Romans 5:1216). Christ had to die on the Cross because Adam had brought sin and death into the world. Therefore, just as God provided an atonement for Adam’s sin(Genesis 3:21)(5), so Christ has provided atonement for our sins because we are “in Adam”(1 Corinthians 15:22). Christ’s death was an atoning sacrifice for sin.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과 지금 행하고 계시는 일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 사건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 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만 했는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로마서 5:12-16). 아담이 죄와 죽음을 세상에 가져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를 속죄 하셨듯이(창세 3:21)(5), 우리는 아담 안에”(고린도 전서 15:22)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속죄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이었다.

 

It is important to keep in mind that atonement involves a blood sacrifice(Hebrews 9:22), which implies violence and death. However, this surely makes no sense in a theistic-evolutionary worldview where violence and death have been a part of God’s process of creation over millions of years. Accepting millions of years of human and animal death before the Creation and Fall of man undermines the teaching of the atoning work of Christ. Theistic evolution does not just undermine Genesis and the supernatural creation of Adam, but it also undermines the doctrine of the atonement(6).

속죄에는 폭력과 죽음을 암시하는 피의 제사(히브리서 9:22)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폭력과 죽음이 수백만 년에 걸친 하나님의 창조 과정의 일부분라고 말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세계관에서는 이것이 의미가 없다. 인간의 창조와 타락 이전에 수백만 년 동안 인간과 동물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속죄 역사에 대한 가르침이 손상된다. 유신론적 진화는 단지 창세기와 아담의 초자연적인 창조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속죄의 교리까지도 훼손시킨다(6).

 

Furthermore, although Paul does not make specific mention of Adam in 1 Corinthians 15:1-5, he understands that Adam is foundational for sharing the gospel. For example, in a pagan culture he begins with a biblical understanding of creation(Acts 14:1517, 17:2428), specifically with reference to all people coming from one man(Acts 17:26, ESV), which leads him to speak of Jesus and the Resurrection, calling all men to repent in light of God’s judgment of sin(Acts 17:30-31).

더욱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1-5에서 아담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담이 복음을 나누는 것에 대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교도 문화에서 그가 복음을 전할 때는, 창조에 대한 성경적 이해(사도행전 14:15-17, 17:24-28)로부터 시작하는데, 특히 한 사람에게서 모든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언급한다(사도행전 17:26).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비추어 모든 사람이 회개할 것을 권한다(사도행전 17:30-31).

 

 

1 Corinthians 15:20-22

고린도전서 15:20-22

 

In verses 21-22, Paul connects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to the foundational historical events of Genesis 1-3. The Christian faith is dependent upon the historicity of these events.

21-22 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창세기 1-3장의 기초적인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킨다. 기독교 신앙은 이 사건들의 역사성에 의존한다.

 

For since by man came death, by Man also came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For as in Adam all die, even so in Christ all shall be made alive.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In verse 21, Paul tells the Corinthians that death came through a man, namely Adam. He then uses the Adam-Christ typology to explain the reason for the Resurrection. In verse 22, Paul points us to the mortality of the human race because of our relation to Adam. However, those who are in Christ will be made alive(7).

2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죽음은 한 사람, 즉 아담을 통해 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아담-그리스도 예표론을 사용하여 부활의 이유를 설명한다. 22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아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사망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날 것이다(7).

 

The claim that Adam was not historical overlooks the fact that the parallel between Adam and Christ is too close for one to be historical and not the other. Moreover, how could a mythological figure affect the human race in such a negative way? The focus throughout 1 Corinthians 15, however, is on Christ’s Resurrection from the dead a physical Resurrection with spiritual implications. Those who argue that the death Adam brought into the world was only spiritual must answer the question as to why Christ had to die physically. If we reject the biblical revelation that God created Adam supernaturally, we have to reject that physical death came about because of his disobedience. Then there really is no need for the Cross, atonement, or a new heaven and earth. Biblically, all of these are needed because death and suffering entered into the creation through Adam’s disobedience toward God in Genesis 3(Romans 5:1221, 8:1922; Revelation 21:4, 22:3).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가 너무나 가까워서 하나는 역사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더욱이, 신화적 인물이 어떻게 그러한 부정적인 방식으로 인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전체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부터의 부활, 즉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인 부활에 맞춰져 있다. 아담이 세상에 가져온 죽음이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왜 육체적으로 죽으셔야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을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계시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그의 불순종으로 인해 육체적인 죽음이 왔다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 속죄, 또는 새하늘과 새땅이 정말로 필요 없게 된다. 성경적으로, 창세기 3(로마서 5:12-21, 8:19-22, 요한계시록 21:4, 22:3)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창조세계에 죽음과 고통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

 

 

1 Corinthians 15:26

고린도전서 15:26

 

It was through Adam that death entered into the world,(8) and it was through Christ that death was conquered: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을 통해서이고, 죽음이 정복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The last enemy that will be destroyed is death. (1 Corinthians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린도전서 15:26)

 

The fact that death is called an “enemy” implies that it is not natural, and therefore cannot have been part of the original state of creation in which God created humanity. In Romans 5:14 Paul says death reigned from the time of Adam, while Romans 5:21 suggests that the dominion of death is tied to that of sin since “sin reigned in death.” It was Adam’s disobedience (Genesis 2:17, 3:619) that brought death into the world, which is why Paul believes death to be an enemy that needs to be destroyed. But from an evolutionary viewpoint, death is not an enemy it’s a God-ordained part of the process of the creation of life on earth.

사망을 원수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원래의 창조 상태의 일부분일 수 없다. 로마서 5:14에서 바울은 아담의 때로부터 사망이 왕노릇 하고 있다고 말하며, 로마서 5:21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이래 사망의 지배가 죄의 지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 죽음을 가져온 것은 아담의 불순종이며(창세기 2:17, 3:6-19), 그래서 바울은 사망을 멸망 받아야 할 원수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원수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에 생명체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부분이라는 것이다.

 

Jesus’ Resurrection was ultimately a victory over death, which is why we even see our Lord outraged over the physical death of his friend Lazarus (John 11:35). Verse 33 tells us that Jesus was “deeply moved” and the verb in Greek embrimaomai “always speaks of deep seated anger and does not connote mere emotional upheaval.”(9) Why was Jesus angry? Because of the power of sin and death that was reigning in the world. Christ came to overcome death, and we need to live in the light of that fact.

예수님의 부활은 궁극적으로 사망에 대한 승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친구 나사로의 육체적 인 죽음에 대해 분노하신 것을 볼 수 있다(요한복음 11:35). 33절에서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고말하는데, 여기서 그리스어 동사 ‘embrimaomai’항상 깊이 자리잡은 분노를 말하고 단순한 감정의 기복을 뜻하지 않는다.”(9) 예수님은 왜 화가 났는가? 죄와 사망의 권세가 세상에서 왕노릇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이기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실에 비추어 살아갈 필요가 있다.

 

 

1 Corinthians 15:45-49

고린도전서 15:45-49

 

In verses 4244, Paul points out that our new bodies will have a glory that our present ones do not have. The reason we need new bodies is the result of the corruption(10) brought about through Adam’s disobedience(Genesis 3:19). However, unlike the Greek view of the afterlife, Paul does not teach that our future bodies will be made out of spirit.

42-44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새로운 몸은 현재의 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영광을 갖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몸이 필요한 이유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의 결과이다(창세기 3:19). 그러나 사후 세계에 대한 그리스인의 견해와는 달리 바울은 우리의 미래 몸이 영으로 만들어 질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In order to make his point about the nature of the body, Paul typically makes his appeal to Scripture. In verse 45, Paul quotes from Genesis 2:7 where God made Adam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gave him a soul, a living being:

몸의 본질에 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바울은 전형적으로 성경에 호소한다. 45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땅의 흙으로부터 만드시고 그에게 혼을 주셔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인용한다.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However, the spiritual is not first, but the natural, and afterward the spiritual. The first man was of the earth, made of dust; the second Man is the Lord from heaven. As was the man of dust, so also are those who are made of dust; and as is the heavenly Man, so also are those who are heavenly. And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man of dust,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Man. (1 Corinthians 15: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린도전서 15:45-49)

 

Paul uses the word “first” before “man” in order to draw the contrast between Adam and Christ. He also uses Adam as a proper name in order to identify the man in Genesis 2:7. In doing this, Paul clearly establishes Adam as the first man in relationship of order to humanity. Furthermore, the fact that Paul states that Adam was the first man should alone refute the idea that he was “the head of a tribe”(11) or a “neolithic farmer”(12) as these ideas both allow for pre-Adamite humans.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대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사람앞에 첫번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창세기 2:7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아담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인류에 관한 순서의 관계에서 첫 번째 사람으로서의 아담을 분명하게 확립한다. 더욱이 바울이 아담을 첫 번째 사람이라고 언급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종족의 우두머리”(11) 또는 신석기 시대의 농부”(12)였다는 개념을 반박한다. 이런 개념은 모두 아담 이전에 인간이 있었다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our present bodies and our resurrection bodies. Paul’s reference to “the natural” is referring to Adam while “the spiritual” refers to Christ. The parallel Paul uses is that of Adam’s bodily existence and Christ’s resurrected body.(13)

우리의 현재 몸과 부활한 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바울의 육적인에 대한 언급은 아담을 가리키는 것이고, “영적인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바울이 사용한 평행어구는 아담의 육적인 존재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에 관한 것이다.(13)

 

In verse 47, Paul moves from the contrast between “natural” and “spiritual” to that between the “earthly” and “heavenly.” This helps define what he meant by “natural” and “spiritual” by stressing the origins of the two men. Just as the first Adam was of the earth and therefore the originator of humanity, so Jesus Christ, the Last Adam, is the originator of a new humanity.

47절에서 바울은 육적인영적인의 대조에서 하늘의 대조로 옮겨간다. 이것은 두 사람의 기원을 강조함으로써 육적인영적인이라는 말에서 바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정의하게 해 준다. 아담이 땅에서 났으므로 인류의 원조가 되었듯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원조가 되신다.

 

The Apostle Paul does not separate Christ’s work of redemption of humanity and creation (Romans 8:1922) from Adam’s disobedience. In 1 Corinthians 15:2122, 4549, Paul grounds the bodily death and Resurrection of our Lord Jesus in the reality of the history of Genesis. It was a real man, Adam, who brought about physical death and corruption into God’s very good world (Genesis 1:31). This is the reason Paul says Jesus came to earth as a real man in order to undo the work of the first man. If we reject the supernatural creation of Adam, then why should we accept the future supernatural resurrection from the dead? Many theistic evolutionists inconsistently reject the supernatural creation of Adam yet accept the reality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the future bodily resurrection of the dead. This is equally at odds with the truth claims of the secular scientific majority who deny any form of supernatural resurrection. This inconsistency is the sign of a failed argument.

사도 바울은 인류의 구속과 창조에 관한 그리스도의 사역(로마서 8:19-22)을 아담의 불순종과 분리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5:21-22, 45-49에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초를 창세기 역사의 실제성에 두고 있다. 하나님의 매우 좋았던 세상에(창세기 1:31) 육체의 죽음과 타락을 가져온 것은 실제의 사람 아담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첫 번째 사람의 일을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실제의 사람으로 오셨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아담의 창조를 거부한다면, 장차 죽음으로부터의 초자연적인 부활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아담의 초자연적인 창조를 모순되게 거부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장차 죽은 자의 육체의 부활은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어떤 형태의 초자연적인 부활도 부인하는 세속적인 다수의 과학자들의 주장과도 동일하게 충돌된다. 이 불일치는 그 주장이 실패라는 표시이다.

 

 

Conclusion

 

Those who reject a historical Adam do so because they have elevated the wisdom of men over the revelation of God. However, Paul reminded the Corinthian church that human wisdom cannot benefit us before God, as He rejects all that rests on human wisdom (1 Corinthians 1:2025, 3:19). Instead, Paul reminded them that Christ, who is the wisdom of God (1 Corinthians 1:24; Colossians 2:3), is far superior to that of any philosophy. The wisdom of the Greeks could not recognize the most profound wisdom of all when they were challenged with it. The truth of the creation of the first man, Adam, embodies true wisdom the wisdom of God, not the wisdom of the age.

역사적인 아담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지혜를 하나님의 계시보다 높은 위치에 두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함으로써,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보다 앞서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고린도 교회에 상기시켰다.(고린도전서 1:20-25, 3:19). 대신에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24, 골로새서 2:3)가 어떤 철학보다 훨씬 우월함을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리스인들이 이런 도전을 받았을 때, 그들의 지혜로는 모든 것 중의 가장 심오한 지혜를 인식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사람 아담의 창조에 관한 진리는 참된 지혜 즉 시대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현한다.

 

 

Footnotes

1. Jerry Bergman, “Evolutionary Naturalism: An Ancient Idea,” Answers in Genesis, August 1, 2001, https://answersingenesis.org/theory-of-evolution/evolutionary-naturalism-an-ancient-idea/.

2. For example, see influential evangelical theologian Alister McGrath, “What Are We to Make of Adam and Eve?,” BioLogos, March 31, 2010, http://www.biologos.org/blog/what-are-we-to-make-of-adam-and-eve/.

3. Denis Lamoureux, “Was Adam a Real Person? Part 3,” BioLogos, September 17, 2010, http://biologos.org/blog/was-adam-a-real-person-part-iii/P60.

4. Denis Lamoureux, “Evolutionary Creation View,” in Four Views on the Historical Adam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3), 6162.

5. Since Adam and Eve were the only humans at this point, the skin God used to clothe them must have been that of an animal. Although Genesis 3:21 does not explicitly say that the skins were from animals, it is a reasonable implication and one that would make sense to the original audience(Mosaic Community) where the skin of an animal was offered to make atonement for sin (Leviticus 7:8).

6. The Biologos website had many different authors present various ways to understand the atonement in light of evolution. See Joseph Bankar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Evolution, Part 1,” BioLogos, June 9, 2015, http://biologos.org/blogs/archive/substitutionary-atonement-and-evolution-part-1. See AiG’s response, Tim Chaffey, “Evolution and the Atonement of Jesus Christ,” Answers in Genesis, August 28, 2015, https://answersingenesis.org/jesus-christ/evolution-and-atonement-of-jesus-christ/.

7.It is important to note that Paul is not teaching universalism here, as the “all” who are made alive in verse 22 is qualified in verse 23 as “those who belong to him.” Paul clearly believed in a final judgement for unbelievers: Romans 2:5; 2; 1 Corinthians 1:18; 2 Thessalonians 1:9.

8.Romans 5 and 1 Corinthians 15 are dealing with human death. For an explanation of how all animal death is a result of Adam’s sin, see Bodie Hodge, “Biblically, Could Death Have Existed before Sin?,” Answers in Genesis, March 2, 2010, https://answersingenesis.org/death-before-sin/biblically-could-death-have-existed-before-sin/.

9.Grant Osborne,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The Gospel of John (Carol Stream, Illinois: Tyndale House, 2007), 171.

10.The Greek word for corruption, phthora, (1 Corinthians 15:42) is the same word used in Romans 8:21 where Paul refers to the creation’s bondage to decay.

11.See C. John Collins, Did Adam and Eve Really Exist? Who They Were and Why You Should Care (Wheaton, IL: Crossway, 2011), 120121.

12.See Denis Alexander, Creation or Evolution: Do We Have to Choose? (Oxford, UK: Monarch Books, 2008), 236, 243. Alexander acknowledges that this is his view on page 243.

13.Paul does this in order to make the point that “(1) there are two very different kinds of bodily existence; (2) so far they [the Corinthians] have experienced only the one that is common to all Adam’s children; thus (3) they should look forward to the bodily existence that comes only after this first one (and is experienced only by God’s own people).” Roy E. Ciampa and Brian S.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Nottingham, England: Apollos, 2010),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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